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네가 흔들리지 아니하며 2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예레미야 4장 1-2절
순종하지 않으면 죽을까봐 두려워서 하는 순종은 사실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영을 주신 적이 없으시며, 양자의 영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실패도 있고 실수도 있고 관계적인 상처도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가장 깊은 낙심을 주는 고난은 대부분 관계의 고난입니다. 피해자·가해자로 나누기 어려운 미묘하고 복잡한 단절의 문제는 주님 안에서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에게 먹이고 마시게 하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억지로’ 실천하면 오히려 갈등이 커집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문제를 대하기 전에 기도하는 습관입니다.
신앙생활의 후련함을 위해 너무 급하게 사과해버리거나 억지로 관계를 붙잡았던 순간들은, 결국 서로 미움을 숨긴 억지 화해만 남긴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돌아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이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모든 다툼의 뿌리는 사람에게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내 이기심입니다. 그 이기심이 주님의 면전에서 먼저 다루어지지 않으면, 외적으로 화해해도 결국 다시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웃 사랑”을 두 번째 계명으로 두셨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비중은 같으나, 순서는 먼저 하나님입니다.
7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잠언 16장 7절
이 말씀을 평생 읊조리셔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지만, 평생 얼굴도 안 보고 지내게 된 관계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최선의 순종을 당장 다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순종의 태도는 늘 지녀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단절된 사람들이 주께서 택하신 분들일 수도 있다면, 천국에서 기쁨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하늘을 바라보며, 용서하려는 마음만큼은 진심으로 품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자녀 간에도, 부부 관계에도, 친구에도, 성도 간에도 서로의 기준을 완전히 만족시키는 관계는 없습니다.
같이 지어져 가는 성전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저 사람은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한 몸이라고 말은 하지만, 내 역할은 괜찮고 미워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길 바라는 때도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일지라도, 그 형제자매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멀어졌거나 끊어진 성도들을 향해서는, 바울과 마가 사이에 결국 이루어진 화해가 언젠가 내 삶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겸허히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내가 용서했다고 해도 상대의 마음은 내 마음과 다를 수 있으며, 아직은 서로 모일 수도, 함께 살아갈 수도 없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각자의 자리에서 슬퍼하며 주를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슬픔은 억지 화해로 억눌러 없애는 것보다, 오히려 그대로 지니고 기도하는 편이 내가 몰랐던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게 하는 길일지 모릅니다.
11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디모데후서 4장 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