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요한복음 16장 21절
하나님은 죽은 자에게 옷을 입히지 않으십니다. 먹이지도 않으십니다. 죽은 자의 찬송도 받지 않으시며, 죽은 자의 요구도 듣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쾌락을 더 사랑한다면, 그는 살아 있어도 죽은 자와 같습니다. 잠언에는 “명철의 길을 떠나 방황하는 자는 죽은 자들의 회중 가운데에 있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탕자도 불순종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처음에는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사용하는 것이 기쁨인 줄 알았겠지만, 그 기쁨은 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세상의 속임수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 돌아오기를 머뭇거리며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려고 하지만, 돼지들이나 먹는 쥐엄열매를 먹기까지 비참해집니다. 죽지도 않은 아버지를 업신여긴 자신의 죄책이 두려워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탕자는 살아 있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했던 패륜아였습니다. 그가 받은 재산은, 우리가 받은 예수님의 용서와도 같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용서를 남용하며, 하나님을 ‘죽은 하나님’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스스로의 죄 안에서 고통받으며, 하나님께 돌아오면 받을 벌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죄는 “하나님이 너를 벌하실 것이다”라고 당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멀리서 그를 알아보자마자 달려가 끌어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를 업신여겼다는 죄목으로 동네 사람들이 아들을 돌로 칠까 하여, 아들을 감싸 안아 보호하려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돌아올 때 받을 징계를 대신 받기 위하여,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감싸 안으십니다.
하나님께 고통을 드렸다는 마음에 죄책감 속에서 머뭇거리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이미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죄로 인해 고통받을 때 그 고통을 함께하시고 계셨습니다. 불순종은 ‘죽은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살아 있으나 하나님과 단절된 ‘영적 죽음’ 가운데 있는 것을 매우 속상해하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즉시, 아버지는 당신의 고통을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분이 “고통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우리의 죄들에 따라 책망하거나 벌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한 그 자체가 이미 벌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여 죄로부터 돌이키는 즉시, 하나님은 우리를 껴안으실 것입니다. 두려움은 사랑을 온전케 하지 못합니다. 주를 만날 만한 이때에, 믿음 없음을 간절히 기도합시다.
10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11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시편 103편 10-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