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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

쾌락

12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13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55장 12-13절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가 즐겁기를 원하시며, 오직 말씀이 우리의 즐거움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말을 매우 모범적이고 도달하기 어려운 추상으로 치부하며, 자신은 예수를 믿지만 거기까지는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겸손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살기로 한다는 것은, 모든 종류의 ‘쾌락’을 버리는 것입니다. ‘쾌락을 버려라’ 하면 곧바로 ‘금욕주의냐’고 따지기 쉽지만, 여기서 말하는 쾌락은 ‘자신이 속히 선택하는 즐거움들’을 뜻합니다.

우리가 속히 선택하는 즐거움은 대부분 ‘지불되는 즐거움’입니다. 묘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하는 즐거움과 자신의 노동을 반대요소로 여깁니다. 그 결과 쾌락 중독은 ‘노동을 가증스러워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이끕니다.

이 시대의 다수는 쾌락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즐거움을 쉽게 선택하도록, 죄악과 우상숭배를 ‘문화’라는 이름으로 친밀하게 조성했습니다. 그래서 휴일의 ‘문화생활’이 끊기면 금단 증세를 느끼고, 주어진 일에서는 쾌락에 준하는 보람과 기쁨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속죄는 우리를 ‘쾌락’으로부터 구원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쾌락의 값을 치르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삼키지만, 용서를 누리는 자녀는 ‘지불을 요하는 쾌락’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무엇을 선택하거나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평안으로 인도하실 때,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자녀마다 기쁨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즐거움은 ‘순종’입니다. 순종은 무겁지 않으며 우리를 펄떡이게 하는 기쁨입니다.

세상은 하나님께 노골적으로 불순종하며 죄악의 짐으로 허덕입니다. 술에 취해 잠깐 펄떡이는 기쁨을 시작해도 채 몇 시간도 못 가 죄악의 무게로 비틀거립니다. 그런 중독적 삶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마침내 쾌락을 위해 목숨까지도 지불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의 의도대로의 사람답게’ 즐거움을 누리게 하시려 십자가에서 ‘진짜 즐거움의 값’을 이미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자녀는 즐거움을 위해 추가 지불이 필요 없습니다. 그는 수고스러운 노동과 즐거움이 서로 상반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자는 보람 없는 끔찍한 인생에 허덕이며, 겨우 모은 돈으로 쾌락을 위해 지불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고, 그 일 자체가 즐거움이 됩니다. 그는 세상의 쾌락을 위해 어떤 지불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장 9-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