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시편 12편 6절
불꽃놀이는 이제 질렸습니다. 불은 그저 구경거리가 아니라, 따뜻함을 주고 밥을 짓는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불을 운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통하여 성냥불과 같은 작은 불씨를 주실 때, 그 불의 감격과 결단은 신실한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준비된 장작을 말씀으로, 그리고 기름을 성령으로 적셔 그 불씨를 이어붙여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설교자와 말씀의 전달자들은, 성냥불에 그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불씨를 가정과 공동체, 그리고 삶의 현장으로 옮겨 붙이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감격에 자신이 취해, 그 불을 더 키워야 할 책임을 잊습니다. 성냥불은 잠시 빛나지만 따뜻하지도 않고, 밥을 짓지도 못합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성냥팔이 소녀처럼, 사람이 없는 거리에서 외롭게 성냥을 켭니다. 불꽃 속에는 맛있는 음식과 웃음이 비치지만, 실제로는 잡히지 않는 신기루일 뿐입니다. 그런 설교자에게서 말씀을 받는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함께 영적인 곤핍 속에서 피골이 상접해 가는 것입니다.
불씨를 이어붙일 장작과 기름은 곧 말씀과 성령입니다.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삶 속으로 옮겨와야 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쌓지 않는다면, 우리의 결심과 결단은 기초 없는 감정일 뿐이며, 모래 위의 집처럼 무너집니다. 반대로 말씀을 많이 알아도 성령의 교제가 없다면, 마른 장작은 불이 붙지 않습니다.
집회에서, 설교를 통해 큰 감격을 받았습니까? 그러나 그 감격이 곧 삶의 열매로 이어지지 않아 자책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감격이 ‘작은 불’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불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기름과 장작, 곧 성령과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설 수 있는 힘은 우리의 결단이 아니라, 성령에 적신 말씀의 기초에서 나옵니다.
삶 속에서 받은 은혜와 감격이 추억처럼 멀어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 젖어 있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을 때, 감격은 감정으로 사라지지 않고 교제로 이어지며, 그 교제는 신실한 동행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없이 반짝이는 감격만을 믿음이라 여기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는 비열함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은 불꽃처럼 신실하게 타오르는 관계입니다. 그 사랑은 감정의 불이 아니라, 교제의 불이며, 성령과 말씀으로 지속되는 불입니다.
이제 마음속 장작을 말씀으로 쌓고, 성령으로 적셔 두십시오. 엘리야의 제단처럼, 우리 마음의 젖은 장작 위에도 하나님의 불이 내려, 다시 타오르게 하실 것입니다.
6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가 8장 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