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태복음 26장 56절
도살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양처럼 예수님은 끌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 죄를 위하여 제사드려질 양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종들에게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예수님께만 그런 시선을 허락하셨습니다. 생명을 버릴 만한 이유를 갖고 있는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뿐이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아직 그런 시선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성령을 아직 받지 못했으므로, 각자의 생명을 버릴 만한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이 붙잡히실 때에, 다른 양들, 즉 제자들이 도망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동일한 시간에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시선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사도들보다 먼저 되셨듯이, 지금 성도들인 우리의 삶에도 각자 때에 맞게 허락된 시선이 있습니다. 누가 도망가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 내 앞에 놓인 고난에 대한 나의 시선이, 내 곁에 있는 자들에게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든 때가 되면 예수님처럼 홀로 남을 때가 옵니다. 모두가 끝까지 함께할 것 같았던 즐거운 교제의 시간들이 무색해질 만큼,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의 모습을 우리 각자에게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의 인생 속에, 그분이 겪으셨던 외로움과 슬픔과 아픔을 맛보게 하십니다.
“나를 사랑하신다면서 왜 주님은 이런 슬픔과 아픔을 맛보게 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사랑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신뢰관계로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한 내리사랑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양육하시다가, 때가 되면 우리의 사랑도 받고 싶어하십니다. 주님이 받고 싶으신 사랑은, 주님의 슬픔과 고통을 우리가 알아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 그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수난을 모두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스포이드로 주님의 고난을 한 방울만큼도 안 되게 허락하십니다. 주님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고난의 눈물을 허락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고난 중에서 쓴맛을 보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이 그 쓴맛을 맛보여줄 만큼 당신을 깊이 사랑하고 신뢰하신다는 증거입니다.
29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빌립보서 1장 29-3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