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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 편리

타협, 편리

24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25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내매 26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 곳의 이름이 되니라

사사기 1장 24-26절

요셉 지파가 여호수아 시절에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잔류 족속을 정복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본래 벧엘이었던 곳, 루스라고 불리던 성읍을 정탐했습니다. 이 정탐의 모습은 여리고성 전쟁 때의 정탐꾼과 대비됩니다.

여리고성에서는 라합이 정탐꾼에게 항복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여리고의 정탐은 전쟁의 편의를 위한 타협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정한 라합을 여리고에서 건져내는 정탐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 지파의 루스 정탐은 성읍에서 나온 사람과 협상하여 입구를 알아내는 인간적 타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라 하셨습니다. 조금만 남아 있어도 그들이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는 가시와 올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리고의 정탐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는 정탐이었고, 루스의 정탐은 인간적 전술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분명합니다. 정탐꾼이 살려 보낸 사람이 다시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같은 이름의 성읍을 세웠습니다. 아주 조금 남겼던 자들이 다시 성읍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적 타협은 문제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하고 허무한 가지치기로 끝나기 쉽습니다.

인간적 편의, 곧 하나님의 길이 아닌 사람의 길에 타협하는 게으름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는 염려와 유혹으로부터 온전한 승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흔적조차 남지 않게 마음의 가나안 족속을 제하여 버려야 주님과의 온전한 화목이 가능해집니다.

세상적 염려와 유혹이라는 가나안 족속과 마주할 때, 내 방법이나 훈련으로 통제하려는 안일함을 버려야 합니다. 애쓰는 기도 없이 이길 수 있는 유혹과 염려는 없습니다. 성경이 머리로 이해되어도 몸과 마음으로 체득되지 않으면 온전한 승리를 이룰 수 없습니다.

반복된 죄를 “어쩔 수 없다” 여기며 안일하게 받아들이면, 평생 죄와 세상의 염려에 끌려다니는 영향력 없는 그리스도인이 될 뿐입니다. 힘써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하고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을 가볍게 여기는 패잔병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눈을 꼭 감는다고 실제 전쟁에서 자유할 수 없습니다. 꿩처럼 머리만 숨긴다고 해서 사냥꾼에게 내 몸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경고와 훈계를 실제로 여기고 마음에 깊이 새기십시오. 경각심을 가지십시오. 죄가 만연한 이 세상을 시한폭탄처럼 여기며, 주님의 진노를 바라보는 눈을 기도로 크게 뜨십시오. 안일하게 지낼 수 없습니다.

내가 안일하게 타협했던 작은 죄는 반드시 성읍이 됩니다. 성읍은 반드시 다시 전쟁해야 하는 큰 문제가 됩니다. 작은 불씨를 남기지 말고 기도로 마음을 든든히 하여, 영육 간의 온갖 더러움으로부터 자신을 지키십시오.

1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린도후서 7장 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