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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잘못된 성교육

교회의 잘못된 성교육

3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사무엘하 11장 3절

사무엘하 11장은 전쟁 중임에도 참전하지 않고 궁에서 지내다 간음을 저지르는 다윗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했고, 성경은 그 죄를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오늘 이 기록을 따라, 한국 교회의 성 문제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점검하려 합니다.

현재 우리는 문란한 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체감하지 못해도, 교회 청년부의 현실은 이미 육적 순결을 잃은 이들이 허다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교회의 메시지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교육의 방식은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말씀을 보지 않은 채 ‘포악’에 가까운 지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혼전 순결을 지키지 않은 청년들에게 교회는 더 큰 죄를 허용하는 길을 사실상 열어 주었습니다. 다수의 교회는 상대를 ‘음녀’나 ‘가해자’로 낙인찍고, “관계를 끊어라”는 요구만을 강요합니다. 그러나 혼전 간음은 혼자 저지를 수 있는 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막연한 영적 두려움만을 조장하는 주입식 명령은, 겉경건한 ‘사이비적’ 태도를 양산해 왔습니다. 다윗이 책망과 회개 후 밧세바를 버렸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더러운 것 닦아내듯 상대를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실상 밧세바는 다윗 곁에서, 다윗이 성 범죄자였음을 평생 상기시키는 존재와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그 꼬리표를 떼어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간음에 대한 다윗의 처사이며, 죄의 결과를 책임지는 방식이었습니다. 반면 오늘 교회는 다윗의 신앙이 아니라 ‘암논’의 잔혹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청년들은 뒤탈을 피하려 관계를 급히 단절하고, 겉으로는 의롭다 여김을 받으려 위선을 더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14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15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16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17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사무엘하 13장 14-17절

교회는 회개를 죄의 ‘단절’이 아니라 죄의 ‘책임’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상대를 버리라는 압박은 암논의 죄를 중첩할 뿐입니다. 말씀은 죄를 숨기거나 전가하지 말고, 책임과 회복을 향해 함께 짊어지라고 가르칩니다. 다윗의 기록은 우리로 하여금 죄의 결과를 회피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과 책임, 공동체적 돌봄으로 나아가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