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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의 겟세마네

마가복음의 겟세마네

32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마가복음 14장 32-33절

우리는 보통 겟세마네의 기도를 떠올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고통을 피하고자 고민하신 장면으로 생각합니다. 죽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셨고, 육체적 고통이 너무 클 것을 두려워하셔서 세 번이나 기도하셨다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겟세마네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쓴 잔으로 여기시기보다, 다른 종류의 쓴 잔을 마시고 계십니다.

이 장면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인자를 팔 자에 대하여 예고하셨습니다. 그 이후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로 기도하러 가신 것입니다. 겟세마네에 이르러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제외한 다른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할 동안에 여기 앉아 있으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뒤로하고 기도할 곳으로 가시며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토록 놀라시고 슬퍼하셨을까요.

여기 앉아 있으라 말씀하실 때, 제자 중 한 명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고하셨다 하더라도, 사역 내내 함께 다녔던 제자 가룟 유다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 사실로 인해 예수님은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주셨던 제자로부터 배신의 쓴 잔을 마셔야 하는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아버지께 드린 기도는 십자가 사건 자체를 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팔러 오는 자가 가룟 유다가 아니기를 바라시는 기도였습니다.

사랑을 주는 사람은 상대의 속내를 어렴풋이 알면서도, 사랑의 관성 때문에 더 믿어 주고 더 기대하며, 가능한 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음을 아셨을지라도, 그 마음이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에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며, 가룟 유다의 마음이 돌이켜지기를 바라셨습니다. 아버지여, 가능하시면 내가 사랑을 주었던 제자가 그렇게 되는 일은 없게 하옵소서, 라는 마음이 담긴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사역의 뜻에 대해 마음속에 생기는 의문들을 주님과의 교제로 풀지 않는다면, 사람은 결국 자기 생각 속에 갇혀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버리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배신한 제자까지도 얼마나 깊이 사랑하셨는지를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냉소적으로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며 배척하지 않으셨습니다. 유다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날마다 기회를 주셨지만, 유다는 주님과의 교제를 끊고 자기 생각 안에 머물렀을 뿐입니다.

41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마가복음 14장 4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