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린도전서 13장 8절
아들과 전쟁놀이를 하는데, 제가 한 번 죽는 시늉을 할 때마다 아들은 손가락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아빠, 이렇게 남았어요.” 10개의 손가락에서 하나씩 줄어들어 9번, 8번, 7번… 드디어 3번이 남을 때까지, 저는 죽는 시늉을 하며 놀아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8번째 제가 활을 맞고 쓰러지는 시늉을 했을 때, 아들은 두 개의 손가락을 펴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양손 열 개의 손가락을 활짝 펴 보이며 말했습니다.
“아빠, 이렇게 남았어요!”
그 순간, 저는 멍해졌습니다.
조금이라도 의무감이 섞인 쪽에서는 언제 끝나나 횟수를 세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노는 시간이 다시 ‘열 번’이 되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때 떠올랐습니다.
“사랑은 넌센스구나.”
사랑은 형식과 틀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배·봉사·가르침이라는 정해진 틀 안에서 주님을 만나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은 형식 너머에서,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개인적 충격’으로 찾아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이기적인 듯한 사랑으로 아빠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사랑의 표준을 이야기합니다.
성실한 주일성수, 성실한 헌금, 성실한 봉사, 성실한 성경읽기.
이것들은 필요한 질서입니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표준을 초월합니다.
사랑이 허용하는 범주 안에서 모든 형식과 틀을 뛰어넘습니다.
전쟁놀이가 3번 남았었는데, 갑자기 10번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몇 번 남았는지’는 제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인생의 고난도 그렇게 숫자를 세며 살아왔습니다.
“8번 속았지.”
“10년이나 힘들게 학교 다녔지.”
“언제쯤 내가 원하는 평안이 올까…”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제가 고난의 숫자를 세고 있었을 뿐,
그 모든 과정 동안 주님은 저와 전쟁놀이를 하고 계셨다는 것을.
제가 지쳐 넘어지는 순간에도, 주님은 “다시 10번!” 하며 저를 붙드셨습니다.
10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아가 7장 10절
내가 사모하려는 것에 내가 속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모해주시는 분에게 내가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나를 사랑할 때 저는 아들의 것이 되었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실 때 저는 주님의 것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