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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만나

과제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하나를 끝내면 또 하나가 생기고, 또 둘이 생깁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놓치는 제 모습을 봅니다. 피곤해지고 지친 일상에서 말씀과 기도보다는 오락으로 쉼을 얻으려고만 하는 것 같습니다.

오락을 하고 영화를 보고 다른 것들을 나의 휴식이라 여기다 보면, 어느새 말씀 묵상과 기도의 시간은 재미없고 지루해 보입니다. 주님은 나의 쉼이 되어 주신다며 고백했던 제 삶 속에서, 어느새 기도와 말씀은 여러 여흥보다 뒷전이 됩니다. 어제 혹은 일주일 전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처럼 스스로를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도와 묵상을 배제하게 되는 생활이 반복되면, 우리는 곧 깨닫게 됩니다. 오락이나 여흥은 결국 수고가 되며 고통이 됩니다. 묵상과 기도가 소홀해지는 순간에는 영혼의 괴로움을 민감하게 느끼지 못하지만, 곧 메마른 영혼이 괴로움을 겪으며 삶이 구덩이로 치닫는 것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결국 다시 울며 하나님께 돌아가곤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는 하루에 꼭 먹어야 할 양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에게 대항하여 말했습니다. 왜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이 빵은 푸석푸석하여 싫증난다고 불평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알게 하시려 준비하신 목장이었고, ‘만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신령한 빵이었습니다.

식사는 하루에 한 끼도 거르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은 쉽게 소홀해지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충분히 깨닫지 못해, 영혼이 겪는 괴로움에도 둔감하게 지나칩니다. 믿는 우리의 괴로움과 고난의 원인은 결국 하나님과의 교제를 놓친 것에 있지만, 우리는 괴롭고 지칠 때 다른 여흥·연락·오락·쾌락에 훨씬 쉽게 의지하려 합니다.

연약할 때, 아직 불완전할 때, 어리석을 때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여 우리에게는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고난 속에서도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담대함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믿는 우리의 모든 고난 속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믿음 안에서도 하나님을 잊고 사는 이들에게까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비추기 원하십니다.

제때 하나님이 주시는 식사를 걸러 비루해진 우리에게, 다시 무릎 꿇고 아버지를 부를 힘을 주시고, 사랑받는 자녀처럼 복스럽게 말씀을 먹고 기도하게 하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17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18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19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0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시편 107편 17-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