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예레미야 5장 31절
9내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도다 10그런 후에 내가 본즉 악인들은 장사지낸 바 되어 거룩한 곳을 떠나 그들이 그렇게 행한 성읍 안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도서 8장 9-10절
샤머니즘은 점복의 기술을 가진 주술사가 춤, 노래, 무속 의식을 행하며 길흉을 말하는 종교적 행태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기독교의 많은 모습에 이 ‘샤머니즘’적 요소가 깊게 깔려 있습니다. 교회의 어떤 점이 무속과 닮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술사는 길흉을 점치는 기술, 카리스마 있는 말투, 억양, 감정적인 퍼포먼스로 대중을 압도합니다. 그의 말에는 신학적·윤리적 근거가 없어도, 사람들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의 말을 ‘신뢰’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반응을 확인하며 근거 없는 말에 매료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안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정교하게 구성된 예배 순서, 무게감 있는 목소리, 웅장한 분위기, 권위 있는 말투가 진리의 근거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성경과 전혀 상관없는 말이어도, ‘예배 형식’에 스스로 압도된 교인들이 설교자의 모든 말을 분별 없이 신뢰합니다. 이런 구조는 많은 지도자들이 악용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그리하여 교인들은 이 지도자들을 영적 부모보다 더 크게 여기고 절대적 권위를 부여합니다. 그러기에 많은 목회자와 지도자들은 성경이 요구하는 충성된 선지자적 설교자가 되기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종교적 기술’을 익힌 주술사처럼 되기를 더 쉽게 선택합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전문가가 됩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사라진 하나님의 영광을 무화과나무 치마로 흉내냈듯, 이들도 양복이나 가운을 성스러운 의복인 척 걸치며 제사장처럼 보이려 합니다. 교인들이 분별하지 않고 “아멘”만 해주니, 그들은 교회 안에서 절대권력자가 됩니다.
신앙의 하향평준화는 이러한 지도자들이 소수의 사람만 있어도 충분히 부를 축적하도록 돕습니다. 교인들이 영적으로 미숙하기에, 지도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며 조종합니다. 이런 지도자들은 악을 더 잘 행할수록 오히려 크게 부요해지고, 자녀들에게는 비단옷을 입히며 꽃길만 걷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최종 결말은 성경이 말한 그대로입니다. 심히 비참한 멸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