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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먼저 있던 것

사람보다 먼저 있던 것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세기 2장 9절

선악의 기준은 아담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이미 존재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먹어야 할 생명나무와 먹지 말아야 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먼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데려오기 전에 이미 세워 두신 기준입니다. 그 의미는 분명합니다. 선악의 기준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두신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선악의 기준을 미리 정해 두셨을까요?

우리는 타락하여 종종 스스로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습니다.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나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만들어진 존재는 반드시 의존성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모든 권리 사용도 안전한 곳에 의존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조성을 알게 하시기 위해 피조물에게 합당한 ‘금기’를 제시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피조된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 기준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기준을 인정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에서 벗어났습니다. 뱀의 조언은 이미 존재하던 규칙을 왜곡하여, 우리가 의존해야 하는 창조주를 의심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타락한 이후 우리의 선악 기준은 완전히 전복되었습니다. 악한 것을 선하다 하고 선한 것을 악하다 하는 마음이 본능처럼 자리잡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해 공평하지 못한 저울을 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공평하지 못하기에, 사람의 기준에는 하나님이 불합리해 보이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라는 왜곡된 확신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분 상태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스스로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법적 상태’입니다. 아담으로 인해 모든 인간은 죄와 사망의 법 아래 법적으로 묶인 것입니다. 이 법적인 굴레를 깨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예표들을 통해 보여주셨고, 지금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완전히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받으리라.”
무슨 구원입니까?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과 화목한 자리로 옮겨지는 대속적 구원입니다. 노예의지에서 자유의지로 옮겨지는 구원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진 자유는 죄를 이길 자유입니다. 완전히 성취되지는 않았으나, 선취하여 누릴 수 있습니다. 누리는 자는 세상을 이기고, 세상은 그를 미워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여 자신을 더 깊이 나타내실 것입니다. 부르짖는 자에게 아버지는 약속에 근거하여 성령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십니다.

14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15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시편 91편 14-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