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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 2

엘리야 2

7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8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열왕기상 17장 7-9절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시냇가에 숨기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야가 엄포한 대로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았으므로 시냇물이 말라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르밧의 과부, 즉 이방 여인에게 이미 명령하셨으니 그녀에게서 음식을 받아먹으라고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0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열왕기상 17장 10절

사르밧 성문에 이를 때 곧바로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녀는 하나님께 명령을 받은 과부였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는, 그녀가 명령받은 것을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숨기다가 아들이 죽고, 엘리야의 간청으로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입니다.

엘리야가 등장하는 전체 맥락에서, 이 과부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과부처럼 가루와 기름이 가득 찰 줄로 믿고 헌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본문입니까?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는 이방 족속과 다를 바 없어진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과부는 남편 되시는 하나님과 우상으로 인해 단절된 북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또한 죽어버린 과부의 아들은, 과부의 작은 불신앙, 즉 하나님보다 한 번 먹을 빵의 재료를 더 신뢰한 결과를 상징하며, 이는 결국 북이스라엘이 모두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된 백성들이 타지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신뢰를 갖게 하시려고 이 이야기를 통해 그들을 어루만지십니다. 실제로 북이스라엘은 아주 심각한 우상숭배로 인해 멸망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큰 죄를 들춰내기보다, 그 근원이 되었던 작은 불신앙의 모습을 과부의 이야기로 상징적으로 보여주십니다.

과부가 “먹고 죽겠다” 하며 남은 가루와 기름을 의지했지만,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셔서 그녀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가루와 기름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가루와 기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가루와 기름은 소제와 번제의 결과로 나옵니다. 소제는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 하나님께 드림으로 먹을 양식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충성을 의미하고, 번제는 짐승을 쪼개고 피를 뿌리고 내장을 꺼내 그 기름을 태움으로, 숨긴 것 없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겠다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소제(가루)와 번제(기름)를 베풀고 계십니다.
끊어지지 않는 충성과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16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열왕기상 17장 16절

과부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녀를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과부의 죄로 인해 아들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17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8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열왕기상 17장 17-18절

과부는 즉시 자신의 불순종이 아들을 죽게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결국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부 자신이 죽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고통을 허락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22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열왕기상 17장 22절

과부가 아들을 잃은 고통은 ‘죄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고통’을 가르치기 위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고통이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사건이었습니다. 작은 불순종조차 하나님께는 아들을 잃는 것과 같은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엡리야의 간구로 아들이 살아난 후, 과부는 마치 해산의 고통을 잊고 새 생명을 얻은 산모처럼 믿음을 해산합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백성을 향해 사랑을 끊지 않으시고, 결국 그 마음을 돌이켜 믿음을 갖게 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가 되어 고향을 잃고, 사르밧 과부처럼 이방인과 다르지 않은 처지였습니다.
그들은 신앙을 포기하기 직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사르밧 과부 이야기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사랑한 것은 너희의 상태 때문이 아니다.
나의 조건 없는 사랑 때문이었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동일한 말씀이 들립니다.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늘 불순종하고 흔들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보다 크신 사랑을 보이기 위해 이 이야기를 주셨습니다. 사르밧 과부처럼 큰 실패를 통해 큰 고통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죄의 결과로 고통받는 것보다, 그 모든 것을 씻어내고도 남는 더 큰 사랑을 증언하시려는 것입니다.
죄를 완벽히 제거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가 죄인 줄 아는 것도 중요하고, 죄를 짓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죄는 여전히 우리를 괴롭힙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소제(가루)와 번제(기름)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베푸시는 분으로 자신의 사랑을 증언하십니다.

5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후서 3장 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