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 3장 22절
하나님이 사람을 쫓아내신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특권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과 잣대는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거룩한 옥쇄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왕이신 하나님을 따로 두고, 자신들만의 옥쇄를 만들었습니다.
이 이후 모든 인생은 자신이 판단의 궁극적 기준이 되어 버렸고, 하나님조차도 ‘내가 판단한 바를 도와주는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우상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 이름’으로 불러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신은 한 분, 하나님뿐입니다.
현대 사람들도 또 다른 형태의 우상숭배를 합니다. “내 열정에 기름붓기”라는 그럴듯한 모토를 내걸지만, 정작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려 하기보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데만 집중합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 보시기에 ‘자살행위’, ‘마귀의 일’,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가 도래했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은 하나님나라요, 회개는 내 마음 속 다른 통치들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나라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만을 받을 준비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내 열정에 기름을 붓는 행위’가 아닙니다.
내 열정에 기름을 붓는 것은, 다른 불을 성소에 놓아 죽었던 나답과 아비후와 같습니다. 말씀대로 법궤를 들지 않고 수레에 실어 나르다가 떨어진 법궤를 붙잡고 죽은 웃사와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내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스스로 망하지 않도록 “내 이름으로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주시는 것은 단 하나, 왕을 자처하는 ‘자아’를 죽이고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만드시는 성령입니다. 기도는 성령을 받고, 말씀을 통해 왕이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곧 반역자인 ‘자신’을 죽이는 행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여, 자신이 반역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질투를 동반합니다. 하나님은 생명 자체이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려는 우리의 자아를 질투하십니다. 그리고 그 자아가 죽을 수 있도록 성령을 주십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습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 하면 잃습니다. 그러나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심판의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장 13-1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