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누가복음 17장 14절
레위기의 규례를 보면 제사장의 역할은 나병을 치료하는 일이 아니라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사장은 단지 환자의 상태를 진찰해 부정한 자를 진 밖으로 내보내는 일을 맡았습니다. 실제 치료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나병환자 열 명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랑으로 손을 내밀어 고쳐주신 다른 장면들과 달리 매우 냉담하고 거리감 있는 대답처럼 보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들에게만 그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명령은 정직에 대한 요구였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는 예수님이 나병환자를 고쳐주시고 그 결과를 제사장에게 입증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때는 이미 병이 나은 후의 증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이 열 명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아직 자신의 병을 제사장에게 드러낸 적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나병을 숨기는 것은 심각한 불의였습니다. 병을 숨기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 하신 것은 곧 “너희의 부정을 드러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감추지 말고 정직하게 인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명령은 치유의 약속이 아니라 양심을 향한 불호령이었습니다.
본문의 헬라어 ’가다가(ὑπάγω, 휘파고)’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떠나다’, ‘물러가다’, ‘숨어버리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들이 실제로 제사장에게 향한 것인지, 아니면 은둔하듯 떠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에게 가는 길에 자신의 나병을 정직히 인정한 자였습니다. 자신의 부정을 숨기지 않고 진심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한 사람, 그에게만 참된 깨끗함이 임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이 자신이 감히 드러낼 수 없던 부끄러움을 이미 알고 계셨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홉 명은 깨끗함을 입고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한 번도 나병환자가 아니었던 것처럼 살아가려는 저의 속에서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돌아온 한 사람은 자신이 나병환자였던 자임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죄를 없애주시기보다, 먼저 죄를 인정하는 정직을 요구하십니다. 육체의 깨끗함이 아니라 양심의 깨끗함을 원하십니다.
39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누가복음 11장 39절
예수님은 깨끗한 겉모습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숨겨진 병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양심의 깨끗함을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