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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밥그릇

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7절

밥을 먹을 때 밥그릇의 눈치를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숟가락으로 밥그릇을 긁을 때, ‘이렇게 긁으면 아프지 않을까?’ ‘국물이 묻으면 싫어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릇은 단지 음식을 담는 용도일 뿐입니다. 그릇이 자기 역할을 잘 하려면, 그저 깨끗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보배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복음을 품은 자는, 자기 인격과 권리를 내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 ‘나’를 인식합니다. 나의 인격, 나의 자존심, 나의 판단이 묻어나 서로에게 상처를 남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불 속에서 구워내십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때로는 깨뜨려 다시 빚으십니다. 그래야만 질척거리는 흙덩이가 아니라, 단단한 그릇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구워지지 않은 진흙그릇은 모양만 그럴 듯할 뿐 조금만 열을 받아도 형태가 변하고, 그 안에 담긴 것도 함께 변질됩니다. 복음을 전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직 덜 구워진 진흙그릇입니다.
그는 “복음”을 말하면서도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람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일에 열심을 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자는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닙니다. 섬기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면서 자기 자신을 높이는 자는 결국 예수의 자리를 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사람들을 이용한 자들을 주님은 “도둑이요 강도”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실 때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셨습니다. 그분은 직접 뜯기고 부어지는 떡과 포도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복음을 전한다 하면서 교인들을 ‘떡 먹듯이’ 이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지만, 그로 인해 한 영혼을 더 깊은 지옥으로 이끕니다.

1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없음) 15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장 13-15절

그릇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저 담기는 것에 충실할 뿐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담은 그릇입니다.
그릇의 빛깔이 아니라, 그 안의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합니다.
깨끗이 비워지고 구워진 그릇만이 주님의 식탁 위에 올려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