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야고보서 5장 11절
욥의 인내는 단순히 고난 앞에서 신실하게 버텼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의 인내는 오히려 고난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견딘 인내입니다. 그는 육체적 고통보다 더 깊은 무력감과 자격지심, 그리고 그로 인해 드러난 자신의 가증스러움을 견뎌야 했습니다.
1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
욥기 30장 1절
욥은 고난 속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분노합니다. 그의 말을 보면, 친구들도 자신보다 젊은 이들이었던 듯합니다. 그는 그들의 부모까지도 욕하며 자신의 처참함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욥은 스스로도 자신의 무너진 모습을 보며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전에는 ‘나쯤 되니 하나님이 사랑하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형편이 좋을 때는 “내가 이만큼 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신앙이 아니라 조건부 자기 확신입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 대신, 내 상태와 내 공로에 대한 신뢰가 자리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신앙을 깨뜨리십니다.
욥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과 ‘거래’의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육신의 조건으로 종의 자리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에게 젊은 엘리후를 세워 말씀하십니다.
8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9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욥기 32장 8-9절
욥은 젊은 엘리후의 말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을 새롭게 배웁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5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기 42장 5-6절
욥은 자신이 누리던 전성기의 신앙이 사실은 하나님과의 거래 관계였음을 인정합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을 ‘상대’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만납니다. 거래의 관계는 불안하지만, 자녀의 관계는 여유롭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능력이 자기에게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능력 있는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욥은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신앙을 회복시키신 증거는 소유의 회복이 아니라 마음의 회복입니다. 그는 자신을 비난했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10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기 42장 10절
욥의 인내는 고통을 버텼던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견딘 은혜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하나님과의 관계가 거래가 아닌 자녀의 친밀함으로 회복되는 자리에 도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욥의 인내의 결말, 하나님께서 주신 긍휼의 결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