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종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에서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너는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 21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22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
예레미야 2장 20-22절
위 본문에서 성범죄는 우상숭배와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우상숭배를 막연히 생각합니다. 부처에게 절하거나, 점쟁이에게 묻거나, 무속신앙을 따르는 것만을 우상숭배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우상숭배의 본질은 ‘선악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지 않는 것’입니다.
유일한 선악의 기준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이외에 선악의 기준이 되려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각 사람이 자신의 경험, 감정, 지식을 선악의 기준으로 삼을 때, 그는 이미 하나님을 배신하고 있습니다.
즉, 선악의 구분을 알기 위해 주님과 교제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영적으로 성범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해, 하나님께 영적 간음을 행하지 않게 하려는 간절한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선은 무엇이며 악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좋은 것이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좋다”라는 생각의 출발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그 ‘좋음’은 이미 타락한 것입니다.
선의 본질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이 선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언제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도출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악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근거하지 않은 모든 것입니다. 나쁜 것이 악이 아니라, 하나님과 무관한 것이 악입니다.
우리는 ‘좋다’, ‘나쁘다’라는 생각조차 자기본위적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자각하지 못합니다.
선악의 기준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져오지 않는 것이 곧 우상숭배이며, 영적 성범죄입니다.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것이 처음에는 무해해 보일지라도, 결국 영적인 간음에서 실제 육적인 간음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에서 벗어난 욕망의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영적 불륜은, 현실에서의 육적 범죄로 드러나며, 그 결과는 비누로도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입니다.
22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
예레미야 2장 22절
32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33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잠언 6장 32-33절
하나님은 우리의 외적인 행위보다 선악을 하나님으로부터 배우려는 마음의 방향을 보십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 삶은 언제나 우상숭배이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는 간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무엇이 선인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는가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정결함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