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히브리서 4장 1절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연예인 걱정만큼 미련한 게 없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잘살기 때문에, 괜한 걱정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안식에 들어갔습니까?
다른 사람의 걱정이 필요 없을 만큼, 복음의 초청에 응해 진정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해, 단 한 번도 그 안식에 들어가 본 적 없이 살아갑니다.
이 세상은 주인 되신 하나님이 준비하신 잔칫집인데, 정작 잔칫집에 와서도 각자 자기 일을 하며 분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쉬라. 나와 함께 즐거워하라.”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사람을 섬겨주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우리가 잔치를 누릴 때, 단 하나만을 바라십니다. 잔치의 주관자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주관자를 멸시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잔치의 모든 것을 누리되, 아직 준비되지 않은 메인 요리는 건드리지 말라는 부탁을 어겼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금지가 아니라,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존중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잔치 전체를 망쳐놓았습니다.
식어버린 잔칫상 앞에서, 하나님은 깊은 슬픔 속에 인간을 내보내셨습니다.
그 이후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잔치로 초대하시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깨진 관계를 회복하려면 값이 필요했습니다.
그 값은 ‘생명’이었습니다.
사람이 도중에 건드려 미완성으로 먹은 그 요리는, 완전한 생명이 되기까지 익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덜 익은 생명을 취해, 고된 인생을 살다가 결국 죽음으로 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최고의 요리를, 영생이라는 완전한 생명을, 꼭 우리에게 맛보게 하시려는 열망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 열망은 곧 사랑이었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불해야 했던 불순종의 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그분이 모든 값을 완전히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나 태초에 요구되었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에게는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이 인내마저도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즐거움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시험대 앞에 세워놓고 침 흘리며 기다리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코스요리의 기쁨을 하나하나 맛보게 하시며 기다림의 인내를 배우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메인 요리만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사실 ‘분투’라기보다 안식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잔칫집에 몰래 들어온 사단입니다.
그는 고용되지 않은 일꾼이며, 잔칫집 음식에 부패한 것을 섞어 넣어 우리가 거짓된 만족으로 속게 만듭니다.
그가 주는 것을 먹는 한, 우리는 자꾸만 영적인 ‘배탈’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이 믿어지는 사람은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사단이 내미는 부패한 음식, 죄, 탐욕, 불평에 입을 대기 때문입니다.
결국 영혼은 지쳐서 화장실만 들락거리며, 잔치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는 복음만을 믿음과 결부시키십시오.
예수님만이 나를 섬기신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합니다.
잔칫집에서 주는 것만을 먹고, 그분이 준비하신 영생을 기다리십시오.
그런 자는 이 땅에서도 이미 안식의 맛을 보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히브리서 4장 2-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