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시편 95편 8절
기도는 명상이 아닙니다. 기도는 듣는 분이 명확히 정해져 있습니다. 대답하시는 분도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의 기준을 서로의 생각이나 감정에 두기 시작하면, 기도는 점점 흐려집니다. 기도를 통해 주어지는 응답도 마음에 거슬리게 느껴집니다. 내 마음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의 라디오 주파수가 예수님께 정확히 맞춰져 있지 않은 것입니다.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장 5절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한복음 15장 5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지 못한 가지는 말라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더 이상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지는 처음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듯 보입니다. 천천히 마르고 굳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나무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닫지 못합니다. 이렇게 서서히 마르며 굳어가는 상태, 그것이 바로 영적인 죽음, 곧 ‘사후 경직’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지 못한 가지란, 사람들과는 친밀하지만 주님과의 시간이 단절된 상태를 뜻합니다. 서로 울고 웃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도, 주님과의 교제가 없다면 결국 이리저리 널부러진 마른 가지와 같습니다.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의기투합한다 해도, 주님과의 시간이 구별되지 않으면 곧 땔감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죄는 그렇게 우리를 영적으로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죽은 영혼은 자연히 경직됩니다. 이 영적인 경직은 하나님 앞에서의 강퍅함으로 나타납니다. 불평이 많아지고, 주님의 인도하심이 분명하지 않으니 생활도 분주해집니다. 귀에 따가운 말씀을 멀리하게 되고, 말씀과 기도 생활은 옛날의 ‘신앙의 전성기’처럼 희미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믿음의 현역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죽음을 느끼고, 마음이 경직되어 강퍅하게 되는 이유는 단 하나, 두 마음을 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붙들리지 못하고, 다른 것들을 향한 마음의 단절을 미루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려는 마음, 세상을 믿으려는 마음, 그것들을 하나씩 끊어내야 주님과의 시간이 회복될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채 울거나 부르짖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 거짓된 아첨일 뿐입니다.
11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시편 86편 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