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느헤미야 2장 4절
그리스도인이 자신감에 넘쳐 무언가를 한다면, 그것은 이미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아직 자신의 재능을 신뢰하고 있다면,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계획하며, 일 년 혹은 한 달, 아니 하루라도 자기 뜻대로 걸어가고 있다면,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자칭 그리스도인입니다.
느헤미야는 중요한 순간에만 하나님을 찾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불타고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슬픔은 단순한 민족적 비탄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슬픔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헤미야 안에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과 이렇게 닮아 있었다는 것은, 그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되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신임을 받아야 맡을 수 있는 ‘왕의 술관원’이었습니다. 보통의 신자라면 느헤미야처럼 출세한 후에는, 과거의 눈물과 기도를 잊고 안락한 삶에 안주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예루살렘을 향한 슬픔은 하나님 앞에서의 아첨이 아니었습니다. 출세 후에도 하나님이 그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왕 앞에서 하나님을 떠벌리지 않아도, 그의 얼굴빛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근심이 자연스레 드러났습니다. 왕은 그 빛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느헤미야의 진심 어린 슬픔은 꾸며낸 듯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 얼굴빛 하나로 왕의 마음이 열렸고, 왕은 그의 사연을 들으려 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는 왕의 호의와 권세에 의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잠깐의 찰나에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짧은 순간조차 하나님께 묵도했습니다. 그가 믿은 은혜의 근원은 인간의 권세가 아닌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람 앞에서, 권력 앞에서, 찰나의 순간에 그들의 호의에 마음을 기대어 본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항상 하나님께 의탁하며, 순간에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일정한 시기나 위기의 때에만 찾는다면, 그에게 하나님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입니다. 40일 금식기도를 마쳤더라도, 그 후의 순간을 자기 확신으로 살아간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순간의 임기응변을 잘 해냈다 하더라도, 그 뒤에 안심하며 하나님을 잊는다면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주님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은, 무슨 일이 생길 때만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평안할 때에도, 아무 일 없어 보일 때에도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이 나의 목적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마음이 날마다 궁금할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드는 횟수보다 더 자주 말씀을 묵상하고, 더 자주 기도로 주님께 나아갈 것입니다.
14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잠언 28장 1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