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4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5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디모데전서 5장 3-6절
하나님은 과부를 통하여 그 자녀들로 하여금 정절을 배우게 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과부가 다 같은 과부는 아닙니다. 참 과부는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입니다. 그 소망을 두는 구체적인 태도는, ‘외로운 만큼’ 주야로 간구와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유혹받는 만큼, 욕심이 있는 만큼 기도할 때,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31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에베소서 5장 31-33절
바울은 결혼 관계를 말하면서도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과부에 대해 말할 때에도 사실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 아직 완전히 주님께 가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지 못한 이 시기, 즉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취해야 할 신앙의 태도는 바로 ‘참 과부의 태도’입니다.
천국에서 주님을 완전히 대면하기 전까지, 우리는 그분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 욕심이 생기는 만큼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았으나 죽은 자’입니다.
새벽기도의 의의는 단지 새벽같이 일어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만큼 기도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습니까?
그분 없이는 단 한 순간도 버틸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습니까?
참 과부는 남편이 준 사랑을 잊지 않습니다.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정절을 지키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참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앞에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주님께만 정절을 지키려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수많은 봉사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백 번의 봉사보다, 정절의 진심을 지키려 기도의 무릎을 꿇는 한 번이 더 귀합니다.
세상의 유혹을 허용하면서도, 하나님께 복종하는 체하며 자기 생각에 선해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키려는 교인은 지옥에 합당한 교인입니다.
이 말은 여러분에게만이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주는 권면입니다.
참 과부와 같은 교회, 참 과부와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행을 기뻐하시지만, 그것들이 하나도 없더라도, 세상으로부터 정절을 진심으로 지키는 신부된 교회를 무엇보다 아름답게 여기십니다.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장 15-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