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장 7절
성경이 말하려는 자유는 ‘죄에서의 자유’입니다. 그러면 이 자유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이해는 ‘그렇다면 죄는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무엇입니까? 탐심입니다. 그렇다면 탐심이 무엇입니까? 자기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아닌 욕심을 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아닌 욕심을 둔다는 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기에 이것을 ‘죄’라 규정하고 성경은 죄인들을 구원, 또는 심판해야만 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탐욕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타인을 아프게 합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킵니다. 성경은 궁극적으로, 타인을 희생시키기 이전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하나님을 희생시키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탐심은 자신을 만들어주신 분을 아프게 하며 희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만들어주신 분께 자신을 파괴해도 된다는 마음을 드리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주셨다는 것이 인정이 안 된다’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탐심으로 인하여 자기 마음을 스스로 믿게 되었을 뿐이지, 자세히 미루어 살펴보아 하나님이 정말 안 계시다는 것을 확증하지 않았다면, 확실한 근거 없는 자신만의 신념에 따라 심판을 자처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속단과 추정을 과신하여, 하나님을 아프게 하는 죄에 머무르는 이유는 단지 탐심에 미혹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신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공정히 판단하고 있는지, 자신의 판단에 전혀 오류를 발견할 수 없는지 아주 냉정하고 냉철하게 분간해야 합니다. 냉정하고 냉철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속단과 추정들에서 자신의 탐심을 발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냉정하고 냉철하면 양심에 귀 기울이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탐심을 스스로가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 자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탐심을 자신과 구별해서 탐심이 자기가 제어할 수 없는 내면의 폭력자라는 것을 발견할 때, 자기가 탐심의 종노릇 했다는 것이 깨달아질 것입니다. 자신보다 강한 것, 그러나 자신을 해하는 것, 즉 탐심을 발견한 자마다 자신을 폭행하는 탐심으로부터 구원하실 구원자를 소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탐심이 자기보다 강하다는 것을 아는 자마다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실 분은 탐심보다도 더 강한 분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는 반드시 ‘진짜 신’을 찾아 갈망할 것입니다. 여러 종교들을 답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탐심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자신의 기도에 진정으로 응답하는 신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내 탐심으로부터 자유하게 해주시는 분, 내 탐심에 종노릇하지 않아도 나에게 만족을 누리게 하시는 분, 그런 분이 진정으로 탐심으로부터 자유해지길 원하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진정한 신이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진정 만났습니까?
도덕 윤리적인 금욕에 사로잡힌 신앙이라면 돌아보십시오. 내가 정말로 탐심에게 만족을 위해 종노릇하는 것을 그치는 것뿐만 아니라, 내 만족을 이루시는 구원자를 만났는지를 돌아보십시오. 철저한 금욕의 필요성을 깨닫는 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깨달음인양 당신을 미혹하여, 당신을 해하는 귀신의 가르침입니다. 내 만족이 탐심에 근거한 방법이 아니고서도 채워지는 삶으로 인도된다면, 당신은 정말로 구원자를 만난 것입니다. 저는 그런 구원자를 만났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만족을 건전히 채워주시며, 탐심으로부터 지속적이고 일관적으로 보호하시는 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장 12절
7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8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시편 39편 7-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