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4장 3-4절
성령님께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의 매는 줄로, 자녀들을 ‘한 소망’ 안에서 연합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다른 소망, 다른 줄로 매인 사람들을 봅니다. 변질된 평안과 변질된 소망은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연합이 아닌, 다른 줄로 매인 거짓된 연합을 이루게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질된 평안과 소망입니까?
9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시편 73편 9절
인간적인 평안과 소망은 변질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님 안에서의 연합보다, 합리적인 평안과 정욕적인 소망 안에서의 연합을 더 원합니다. 그들의 입술은 매우 성경적이며, 흠잡을 데 없는 신앙고백과 가르침으로 가득하지만, 정작 그 혀로 맛보는 것은 입술이 말하는 것과 다릅니다.
찬양하고 즐거워하며, 배우고 열심을 내지만, 진정 주님과 올바르게 묶여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주님보다 공동체를 신뢰합니다. 주님을 신뢰하면 공동체를 향한 주님의 시선을 잃지 않겠지만, 공동체 자체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관중심리 속에서 자신의 경건을 타인에게 맡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장 손쉽게 떠넘기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바로 목회자입니다.
올바른 목회자는 교인들이 각자의 믿음생활의 책임과 의무를 자신에게 떠넘기려 할 때, 그 짐을 주님께로 올바르게 되돌려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재분배의 과정은 반드시 책망과 경계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은 사랑으로 바로잡는 그 수고를 귀찮아하며, 막연한 ‘성경적 정보 전달’에만 그쳐버립니다. 그 반복이 결국 오늘날의 생명 없는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막연한 도제 관계, 설교나 강의에 대한 칭찬에 목말라하는 빗나간 욕망, 세력을 불리고자 하는 위조된 평안 등을 기둥으로 삼은 교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 진심 어린 회개를 구하려는 공동체는 점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회개조차도 인간적인 눈물과 감정적 열심으로 치장된 일회성 행사처럼 지나가 버립니다.
사람의 말로만 가르침을 받기를 좋아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두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을 직접 읽으며 고뇌하는 일을 철저히 회피합니다. 그들의 수많은 변명은, 주인이 준비한 혼인 잔치의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 자기의 일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생 속에서도, 정작 하나님을 모실 시간은 조금도 남기지 않습니다.
8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15장 8-9절
2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 7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마태복음 22장 2,3,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