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마태복음 10장 38절
십자가를 지지 않을 때 우리 각 사람의 발은 땅에 붙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은 내 발이 땅에 붙어 걷게 하시려고 주신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걷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공중에서 허우적대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연합’이 아니라 사람과 ‘동화’되기 때문입니다.
연합은 나를 공동체의 타인과 건전하게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길과 나의 길을 구별하면서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를 존중하고 도울 수 있는 반경 안에서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연합 속에는 비교 기준이 없습니다. 자원함으로 주님 안에서 발견한 나만의 독특성이 있으며, 사람이 두려워 타인의 기대에 주관당하지 않습니다.
동화는 공동체에서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몇 대를 이어온 기독교 가정이니 자동으로 복을 받을 것이라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변에 좋은 믿음의 사람이 있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은 없다고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설교로 인한 지적 유희와 소속감의 만족 때문에 개인의 소명을 놓치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신앙이 타인에게 동화돼 있다면, 부단히 그 동화를 벗어나야 합니다. 동화는 연합을 막기 때문입니다. 연합은 각자 소명을 입증하고 성취하기 위해 분투합니다. 그러나 동화는 어느 개인을 우상시하게 만듭니다. 쉬운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릴 때 자동차 게임을 하면 몸을 들썩입니다. 실제 운전은 아니지만 화면 속 카레이서가 자기인 줄 착각하는 것입니다. 액션영화를 보면서도 몸을 들썩입니다. 영화 주인공이 내가 된 듯 가담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들썩였을 뿐 그 배우가 아닙니다. 말씀을 들으며 마음이 들썩입니다. 그러나 실상 말씀은 듣고 돌아가 자신을 살피는 것이지, 들썩임으로 참여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부인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신앙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교제 속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살펴 아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주님 안에서 발견한 사람은 거기에 기쁘게 의지와 힘을 쏟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동화되면 막연한 시청자가 됩니다. 연애를 해본 적은 전혀 없는데 드라마만 보고 기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드라마 시청입니까, 실제 훈련입니까? 연합된 교회입니까, 동화된 교회입니까? 각자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입증하십시오. 아무것도 되지 않았는데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만큼 자기 영혼을 박제시키는 일은 없습니다.
타인을 자랑하고 의지하며 지낼 때, 고린도교회처럼 목회자 중심으로 동화된 마비 신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신앙을 부지런히 살필 때, 각자 속에 고유한 기쁨과 평안이 주어질 것입니다.
3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갈라디아서 6장 3-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