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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쳐링

피쳐링

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장 21절

‘피쳐링’은 어느 음악 작업에 협업자가 아니라 게스트로 찬조 출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찬양하거나 기도할 때, 하나님 나라의 어떤 자리에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많은 경우 스스로 무대의 중앙에 서 있다고 여길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무대의 중앙에서 점점 멀어지는 듯한 감각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이를 사랑하신다, 청년을 사랑하신다”라고 들리던 시절에는 우리가 주인공인 줄 알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믿음이 무대에서 소외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찬양 인도자였다가 청중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젊은 날 화려한 싱어였다가 나이가 들며 식사 당번으로 섬기며 자신이 전락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북적이는 대중에게서 비껴날 때, 무리에서 소외된 듯할 때, 오히려 우리는 예수님을 더 선명히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늘 부르던 찬양의 한 소절, 두 소절이 입에서 절로 맴돌 때, 그것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대 중앙에서 부르던 시간보다 더 깊은 감동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마음과 입에서, 라디오의 주파수가 맞춰지듯 잠깐 흘러나오는 찬양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한두 소절이라 곡의 전모를 알지 못해 가사를 찾아보았는데, 제 상황과 맞닿은 위로가 있어 우연이라 여겼습니다. 그 뒤로도 의도하지 않은 찬양들이 한두 소절씩 자주 흘러나왔고, 습관처럼 가사를 검색해 전체를 찾아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늘 제 형편과 꼭 맞는 내용이었습니다.

17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시편 139편 17-18절

옛날에는 모든 이의 믿음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 인도자요 싱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분주한 일상 한가운데, 불현듯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그 한두 소절을 통해 비로소 깨닫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떠올리는 생각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가지신 생각이 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기도 전에 들으시고, 기도를 시작하기도 전에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압니다. 우리가 드리는 찬양과 기도는 사실 ‘피쳐링’처럼, 혹은 가장 아름다운 특석에서 흥얼거리듯, 나를 향해 노래하시는 주님의 노래에 반응하는 것일 뿐임을 알게 됩니다.

믿음의 ‘무대 중앙’에서 밀려난 듯하거나, 교회에 나갈 형편조차 여의치 않은 형제자매님들이 계시다면, 오늘부터 주님이 문득 떠오르게 하시는 찬양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하늘로부터 나를 기뻐하며 노래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에 젖어들게 하실 것입니다. 무대의 중앙이 아니라 객석의 중앙에서, 나를 향해 사랑으로 수줍게 세레나데하듯 날마다 속삭이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17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장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