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편 73편 1-3절
신앙의 기준은 인간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주 눈을 감고 기도합니다. 우리의 눈이 신앙의 기준이 될 때, 보이는 손해와 이익을 따지게 됩니다. 자기 뜻대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행동하고도 하나님을 믿고 행했다고 자긍하는 이유는, 자기 생각에는 이익을 위한 지혜였다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행동은, 일시적이고 가시적인 이익을 가져오더라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며 회복에 많은 시간이 걸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아들의 모습을 밝히 드러내셨고, 그렇게 기뻐하셨던 예수님을 우리 대신 죽이시고 부활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이 땅의 만족을 포기하며 하나님의 뜻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녀의 순교적 삶이 죽음 이후에 보상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기 전에 보상받기를 반복하여 원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 받는 모든 것은 달려갈 길을 다 달리게 하시려는 격려와 응원입니다. 결승점에 들어가기 전에 은퇴하라고 주시는 축적용 재물이 아닙니다. 매우 많은 그리스도인이 먼저 되었으나 나중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 받은 복을 계수했던 다윗의 실수처럼 자신을 위해 계수하고 축적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어도 축적 행동의 장래가 보장되지 않을 때 요동합니다. 하나님은 축적의 미래를 보장하신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가 일용할 양식이었던 것처럼, 오늘 먹고 오늘 없어지더라도 우리는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오늘 먹고 오늘 없어지면 불안해합니다. 성경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겠으나, 더 중요한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땅의 기득권이 필요했으며, 언제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자기 밥그릇을 목숨처럼 지켜야 했습니까. 세상에 속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득권과 밥그릇을 위해, 오늘 먹고 내일 먹을 양식이 있음에도 가난한 이들을 향해 마음을 닫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타인의 생계를 돕기보다 관계 유지를 위한 “물고기 사료”를 줍니다. 성도의 교제가 아니라 사회적 기술로서의 인간관계를 합니다. 세상을 본받고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만을 좇습니다. 계속 자신의 눈이 신앙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며, 눈을 자주 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혹 눈을 감고 기도했더라도 마음에서는 자신을 삼키려 번뜩이는 욕심의 눈동자를 뜨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눈만 감습니까, 욕심의 눈동자도 감습니까.
실상 악인에 준하는 나중 되기를 자처한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정직한 많은 그리스도인이 실족합니다. 타락한 신자들이 정직한 성도의 순진함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깊이 묵상할 집중력이 없고, 욕심의 눈동자와 마주한 채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눈동자에 기쁨이 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악한 자들을 경험하더라도 정직한 성도는 마음을 더 정결하게 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탐욕을 일삼지 않더라도 불평할 때 하나님은 책망하십니다.
불평은 욕심의 눈동자가 “실눈”을 뜬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욕심이 실눈도 뜨지 못하도록 질끈 감아야 합니다. 그때 주님의 눈동자에 주님이 보시는 것이 보이게 됩니다. 주님이 보여 주시는 악인의 최후에서, 그들이 불평의 대상이 아니라 불쌍하고 안타까운 자들임을 알게 됩니다. 결국 그들이 허용한 욕심의 눈동자가 아가리를 벌려 그들을 삼킨다는 실상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성소에서 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자칭 그리스도인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17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20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시편 73편 17-20절
신앙의 기준은 보이는 이익을 따지는 우리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이며, 욕심의 눈동자를 감고 성소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악인의 형통은 덧없고 일용할 은혜 안의 순종만이 견고함을 이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