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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청지기

불량한 청지기

12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13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전도서 10장 12-13절

신앙생활의 실상을 모르면서 탁상위에서 아무 말이나 애완견에게 던지듯 전하는 교수·학습은, 본능만을 자극하는 포르노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을 개취급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 앞에서 그 여인의 진정한 갈망이 낳은 겸손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가나안 여인에게도 자녀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베푸셨지, 개들에게 부스러기를 주듯 홀대하지 않으셨습니다.

탁상에서 성도들에게 아무 말이나 던지는 근본 원인은, 정작 교사 자신에게 신앙 안에서의 순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순복함이 없으면, 순종에 도전하는 양들의 형편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순복하는 교사는 자신이 신앙에서 얼마나 좌충우돌하며 고집스럽고 연약한지 깨닫게 되며, 양들의 허파에 바람만 넣는 자극적인 지식 전달에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동기부여가 자극적이면, 그 동기로 허영이 부풀고 교만해집니다. 신앙생활은 누군가의 위험한 가르침처럼 순종을 무기로 삼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로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순종입니다. 청지기인 교사가 진정한 대리 목자라면, 실상을 배제한 동기부여로 양들이 미쳐 날뛰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리와 물고 뜯어 이겨보려는 양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누구에게 배웠겠습니까? 이리를 이기는 길은 목자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것, 목자께 자주 안기는 것, 목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것, 양들의 소리보다 목자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양들이 자신의 힘을 기른다고 이리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근본이 다릅니다. 부숭부숭한 양털을 갑옷이라 착각하면 피로 물들 것이고, 동료와 박치기하던 머리를 무기로 여기면 이리에게 잡아먹히고 나서야 왜 머리로 생각하지 않았는지 후회하게 됩니다.

진정한 청지기는 대리 목자 역할을 할 때에도 자신이 양임을 잊지 않습니다. 맡기신 직능의 은혜로 사람인 줄 착각하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자리에 있다고 해서 양이 아닌 줄로 여기기 쉽지만, 가르쳤다가도 언제든지 순복해야 하는 양의 자리로 신속히 돌아간다면, 말씀을 나눈 양들과 함께 울 수 있습니다. 청지기가 양들과 신앙의 자리를 같이하지 않는다면, 그는 ‘양을 치는 자’가 아니라 ‘양아치’일 뿐입니다.

42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누가복음 12장 42-44절

불량한 청지기는 자극적인 동기부여와 지식 전달로 양들을 혼란케 하며, 자신이 여전히 양임을 잊어버린 자입니다. 참된 청지기는 목자의 음성을 따라 양과 함께 울며, 은혜로 제어된 순종으로 때에 맞는 양식을 나누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