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편 84편 10절
어쩌면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려는 설교가, 하나님의 선물을 전하려는 설교가, 정직히 살려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또 다른 악행의 기회를 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주님을 구하지 않으려는 자에게 주어지는 말씀의 지식은 악인의 장막을 넓히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 하지만, 실상 일터가 강도의 소굴인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직히 행하려는 자는 말씀을 쉽게 깨닫지만, 들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며, 무너질 성전이고,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와 같습니다. 갈등이 생기면 험담과 중상모략, 이간질이 가득한 곳에서 감행하는 예배가 진정 교회일 수는 없습니다.
비열함이 높임을 받고, 지혜가 간사함으로 바뀌며, 입술로 모의하며 하나님은 듣지 못하실 것이라 생각하는 곳을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예수님 다시 오실 때는 교회나 성전이라는 단어 대신 새 예루살렘이 도래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의 입술에 오르내리는 교회라는 단어조차 싫어하시는 마음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오늘날 핍박받는 것은 목사도, 선교사도, 그리스도인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교회”라는 단어 그 자체가 핍박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만 들어도 상처 주는 곳으로 떠올립니다. 그렇다면 교회라는 단어는 회복하라고 주신 단어가 아니라, 나 자신을 예수님처럼 못 박으라고 주신 못의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사역자는 이 못을, 이 쓴 쑥을 억지로라도 삼킵니다.
그러나 주님의 성전 문지기로 사는 것이 더 낫습니다. 주님의 문은 어디에나 열려 있습니다. 내가 예수를 전하는 그곳이 시온의 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더 사랑하십니다. 주님을 바라보게 하는 모든 시간과 장소, 그리고 주님을 진실히 사랑하려는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시온의 문들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기도합니다.
“차라리 내가 주님의 성전 문지기가 되게 하소서.”
2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시편 87편 2절
악인의 장막 안에서 높아지는 것보다 주님의 성전 문지기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낫습니다. 교회라는 이름에 묶이지 않고, 어디에서든 주님을 전하며 시온의 문을 지키는 삶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