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기도가 무엇인지 혹시 알고 계신가요?
우리는 어려울 때, 힘들 때, 혹은 밥 먹기 전에 드리는 식전 기도처럼 자주 기도합니다.
그러나 습관만 남은 기도는 금세 비워집니다. 기도의 본질을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기도의 출발점은 말하기보다 먼저 듣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듣고, 들은 바에 순종하기로 결단할 때 비로소 우리의 말이 기도가 됩니다.
그래서 시편은 “의인의 책망을 머리의 기름처럼 귀히 여기라”(시편 141편 5절) 하고, 바울은 “온전히 이룬 자라면 이렇게 생각하라. 혹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빌립보서 3장 15절)고 권면합니다.
기도에 대한 성경 구절 직접 읽고 생각하기
지금, 성경을 펴서 이사야 1장 10~17절을 천천히 읽어보세요.
10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1장 10-17절
이어서 누가복음 11장 29~32절도 차분히 읽어보세요. 소리 내어 두 번씩 읽고, 마음에 걸리는 단어에 밑줄을 그어 두면 더 좋습니다.
29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누가복음 11장 29-32절
읽으셨다면 잠시 멈추고 스스로 답해보세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본질은 무엇일까?”
“왜 어떤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아니하신다’고 하실까?”
“예수님이 ‘요나의 표적’만을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사야 본문은 ‘듣기’로 시작합니다.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형식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본질을 잃었을 때 문제가 됩니다.
둘째,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응답은 씻음·단절·선행·정의·보호로 이어지는 삶의 전환입니다.
셋째, 누가복음에서 니느웨와 남방 여왕의 공통점은 들었고, 반응했다는 것입니다. 표적의 핵심은 눈부신 현상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청종과 회개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도의 본질
기도는 하나님을 듣기 위해 시작됩니다. 이사야는 예배의 한복판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이사야 1장 10절)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곧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이사야 1장 15절)라고 경고합니다. 말씀을 들을 의지 없이 드리는 기도, 삶의 불의와 분리된 기도는 하늘 문을 열지 못합니다. 결론은 명확합니다.
3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이사야 55장 3절
바울도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요약합니다. 기도는 먼저 듣는 자리요, 말은 그다음입니다.
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장 17절
왜 어떤 기도는 막히는가? 욕망으로 쓰려는 청원
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야고보서 4장 3절
그래서 어떤 기도는 막힙니다. 야고보서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우위와 체면을 얻으려는 욕망, 지혜와 은사를 나의 도구로 삼으려는 마음은 응답을 가립니다. 이사야의 탄식처럼, 손을 높이 들어 많이 기도해도 불의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보시지 않습니다(이사야 1장 15절).
형식과 본질: ‘마당만 밟는’ 기도에서 ‘정의와 자비’의 기도로
하나님은 예배의 형식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을 섬길 때에야 의미가 있습니다.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이사야 1장 12절),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이사야 1장 13절)는 꾸지람 뒤에, 하나님은 명확한 대답을 주십니다.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우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이사야 1장 16–17절). 기도는 입술에서 멈추지 않고 정의와 자비로 이어지는 삶으로 검증됩니다.
예수님의 “요나의 표적” 말씀도 같은 결을 이룹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했습니다.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찾아왔습니다. 두 이야기는 “놀라운 기적”보다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태도가 하나님의 표적임을 가르칩니다. 들음 없는 기적 찾기는 신앙을 허물고, 들음으로 시작한 작은 순종은 삶을 새롭게 엽니다.
책망의 은혜로 공동체 속에서 기도가 정결해진다
5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시편 141편 5절
15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빌립보서 3장 15절
또한 바른 기도는 교정받을 준비에서 성숙해집니다. 시편은 의인의 책망을 머리의 기름처럼 여기라 하고, 바울은 생각이 다르면 하나님이 밝히 보여 주신다고 합니다. 주의 뜻대로 기도하는 마음은 말씀과 섭리 속에서 연속적인 인도를 경험하고, 공동체의 권면을 통해 기도가 계속 정결해집니다. 이사야가 하늘과 땅을 증인 삼아 외쳤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점검받는 사람이 됩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그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하며, 그 결단을 정의와 자비의 삶으로 응답하는 공동체적 대화입니다.
기도란, 무엇을 얻을지보다 무엇에 순종할지
현실 속 기도는 거창하기보다 단순해야 합니다. 먼저 소란을 멈추고 짧은 침묵으로 마음을 낮춥니다. 오늘 읽을 말씀 한 단락을 소리 내어 반복해 읽으며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를 기울입니다. 이어서 내 안의 정욕과 체면, 우위 욕구를 성령 앞에 솔직히 적어 내려놓습니다. 필요한 것을 구하되 주님의 뜻이라면이라는 방향으로 간구를 전환하며, “무엇을 얻을지”보다 “무엇에 순종할지”를 구합니다.
그리고 그날 반드시 실천할 선행 하나를 정해 실행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거나, 약자를 변호하거나, 미뤄 둔 화해를 시작하는 것처럼 이사야가 말한 정의와 자비를 구체화합니다. 마지막으로 신뢰하는 동역자에게 오늘의 결단을 공유해 점검을 부탁하고, 하루가 저물 때 내 기도가 더 단순해지고 순종이 더 선명해졌는지 돌아봅니다. 이렇게 기도는 요청 목록이 아니라 동행의 대화가 됩니다.
서원을 가볍게 말하지 말라
4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5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6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전도서 5장 4-6절
마지막으로, 전도서는 서원을 가볍게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기도 중의 약속은 감정의 열기가 아니라 순종의 실행 계획이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분주한 성전을 꾸짖으시며, 사람 보이기 위한 종교적 소란 대신 골방의 집중된 기도와 은밀한 선행을 가르치셨습니다. 말하기 전에 듣는 기도, 그리고 들은 대로 살아내는 순종! 그 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다시 살려 주십니다.